2019년 6월 2일. 상암동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감독과 대화하는 이벤트를 했었다. 1994년작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 영화는 독재정권이 집권하고 경제성장이 최고의 가치이던 시대를 되새기며 만화방에서 만나게 된 깡패와 노동운동가와 대학생이 힘을 합하여 통금을 피해 밤을 지새는 일꾼들과 사회적 문제자들에게 희망을 되찾아 주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낙오자인 사람들의 삶을 찬양하고 제도에 맞선다는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가 용기가 필요한 시기였고 선구적인 영화였다.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 관객의 대화를 하던 중 내 옆에 앉았던 젊은 여성 관객이 질문을 하였다. 여자 배우와 남자 배우가 애증의 다툼을 하다가 마음이 급변하여 입맞춤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장면이 아니냐는, 질문이 아니라 비난에 가까운 저격이었다. 김홍준 감독은 그 당시에는 성인지 감수성이 미개하여 그랬노라고 장황하게 사죄했다. 답변을 들은 여성 질문자는 만족한 표정이 만연했다. 사회자와 대화를 계속하면서 그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왔는데 김홍준 또다시 처절한 자기비판을 한차례 하고 지나갔다. 그 장면이 무진장 폭력적이기라도 한 줄 오해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수준이냐 하면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에서 머리빗을 훔쳐간 장첸을 쫓아간 장쯔이가 갈등인지 애정인지 모를 몸싸움을 하다가 갑자기 입맞춤을 하며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면과 같은 수준이다. 그 정도 장면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명작 <블레이드 러너>에도 나온다. 페미니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김홍준 감독을 비난했던 그 젊은 여성 관객의 기준으로는 세계적 명작인 와호장룡도 블레이드 러너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몹쓸 영화일 것이다. 그후 한국영상자료원은 원장이 바뀌었고 상영하는 영화는 온통 이념으로 범벅된 영화 뿐이었다. 나는 그 후로 시네마테크에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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