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의도 공원이 있는 자리에 옛날에는 여의도 광장이 있었다. 그냥 아스팔트로 포장만 되어 있는 벌판 같은 곳이었지만 광장의 존재는 엄청난 의미를 가졌다.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충성스런 군대의 사열을 받으며 위용을 과시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반대로 독재에 저항하는 용감한 사람들이 운집하는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처음 비행기 활주로로 쓰였을 정도로 넓은 광장에는 수만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었기 때문에 여의도 광장 집회는 규모가 대단하였다. 옆에 국회도 있고 각 정당도 있었기 때문에 여의도 광장에서 벌어지는 집회는 그 자체가 정치적 상징이었다. 김대중, 김영삼 등 민주화 운동의 거목들이 여의도 광장에서 연설을 하면 구름 같은 인파가 모여드는 장관이 펼쳐졌었다.
그랬던 여의도 광장을 김영삼 정부가 공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숲과 꽃과 호수를 만들어서 놀이의 공간으로 만들어서 인근 주민들에게는 품질 좋은 공짜 휴식공간이 생겼을지 모르지만, 정치적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은 눈꼽만한 운동장 구석만 남고 말았다. 김영삼은 자신이 등극하였기 때문에 민주화는 완성되었고 더이상의 정치적 집회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자만심이 민주주의를 망친다.
광화문 광장은 아무 것도 없이 커다란 도로만 있을 때에도 민주화 운동의 최첨병이었다. 특히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를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는 서울역 앞부터 광화문까지 길게 대규모로 이어졌다. 지금의 광장은 문화전문가 유홍준이 주도하여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경복궁 앞의 원형을 되살린다는 역사적 의미와 광장이라는 실용성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후에도 박근혜 탄핵 집회를 비롯하여 많은 정치적 집회가 열렸고, 서울시가 주최하는 각종 문화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주변 직장인들에게는 쉬고 즐길 수 있는 좋은 공원의 역할로 명실공히 광화문 광장은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잘 사용되어 왔다. 이탈리아의 도시는 두오모라는 마을 성당과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프랑스 파리의 광활한 샹젤리제 거리는 정치적 표현의 메카이고 영국의 트라팔가 광장에선 누구나 이름없는 연사가 되어 연설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집회가 싫은 모양이다.
지금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을 공원화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죽은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던 사업이라고 한다. 박원순이 그런 말을 했던가? 하여튼 죽어서 말이 없는 박원순을 내세워서 광화문 광장을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세우고 있다.
서울시의 명분은 교통이다. 광장을 만드느라 도로가 좁아진 탓에 버스 노선이 불편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한다. 전에는 광화문 KT 사옥 앞에 버스가 서고 간단히 유턴하여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오면 되는 편리한 회차점이었으니까 광장을 줄이고 도로를 늘려서 교통통행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광장을 조성하기 전, 거대한 도로만 있을 때로 돌아가겠다는 소리이다. 그곳을 지나는 버스 노선이 한둘이 아니게 많은데 그 노선들을 위하여 다시 KT와 세종문화회관 앞에 도로를 넓히게 되면 또다시 버스로 가득하게 되고 광화문 사거리의 교통신호는 십자 직진에다가 좌회전까지 더해져서 복잡해지고 대기하는 차량은 많아지게 될 테니 사실상 광장의 기능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버스 중앙 차로가 만들어져 정착되고 있는데 굳이 도로변 정류소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횡으로 종로 방향 버스 통행을 위해서라면 광장 끄트머리에 좌회전할 차선을 마련하여 사직터널과 독립문 사거리와 서대문을 거쳐서 다시 광화문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으로 회차하게 하면 된다. 종으로 남대문 방향 버스 통행을 위해서라면 광장 끄트머리에서 유턴하게만 하면 된다. 정류장은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서 넓은 도로에 얼마든지 있다. 교보와 KT 앞과 반대편 세종문화회관 앞에 정류장을 만들게 되면 대기하는 버스들이 길게 늘어서서 자연적인 차벽을 만들어 버릴 것이고 공원은 기능을 잃어 버릴 것이다. 서울시의 광장 개편안은 미국 대사관 쪽을 도로 전용으로 만들고 세종문화회관 앞을 마당처럼 공원 전용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광화문 앞 육조거리를 복원한다는 원래의 의도에 어긋나는 것이다. 즉, 경복궁 앞 끄트머리에 노선 버스만 좌회전과 유턴을 하는 차선만 추가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데도 이런 불필요한 과대 공사를 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