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7일 수요일
《사회를 바꾸려면》, 오구마 세이지 저 - 감상 요약
《사회를 바꾸려면》, 오구마 세이지 저, 전형배 역, 동아시아, 2014
TV로 소개된 이 책은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다. 내 생각을 간단히 줄이면 이렇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체계는 국민을 위하여 작동한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춘기만 되어도 알게 된다. 정부는 국민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 정부는 정부 자신의 이익을 위할 뿐이다. 다음으로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가? 역시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NGO 같은 비영리 시민단체들이 있는데 그들은 시민을 위하는가? 시민단체 역시 그들의 목적을 위하여 행동할 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는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어서 자신들이 대중을 계몽한다는 의식이 강하며, 활동가들도 정치권으로 진입하기 위한 전단계로써 시민단체를 이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래서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형식의 또다른 계급제도를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오구마 세이지 교수는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행동하라!"고 말한다. 오구마 세이지 교수 자신이 직접 시위를 이끌고 있지만, 그가 참석자들을 일일이 지시하고 가르치지 않는다. 참여자들은 스스로 현실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그 결론이 개똥철학이건 뭐건 누구나 광장에 나와서 확성기에 대고 자기의 주장을 직접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집회는 즐겁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집회가 즐거운 행사이고 누구나 생각만 같으면 즉석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는가? TV에서 진중권 교수가 말한 것처럼, 아이들의 식생활 안전을 위하여 유모차를 끌고 모였던 시위와 같은 집회가 되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의 방법은 여전히 가장 유효한 의사표시의 수단인 것이다. 제도화된 정치체계를 통하여 전달되지 않는 목소리는 분명히 존재하며, 각양각색 의사들이 표출될 방법이 분명히 존재해야 좋은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정부는 집회와 시위가 나타난다는 것을 숨기고 억제하려고만 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국론분열이라는 말은 가장 비민주주적인 모순적 어휘이다. 커다란 흐름은 있다고 해도 저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서 토론하고 협상하며 합의점을 찾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하지만 국론분열을 막자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부터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예 민주주의를 하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런 비민주주적이고 반민주적인 정부가 어디에 있는가.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제도화가 필요했지만, 제도화된 민주주의도 역시 완벽하지 않으며 여전히 직접민주주의적인 수단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오구마 세이지 교수는 직접 행동하고 시위에 참여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회는 민주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니 당연히 즐겁고 편안해야 한다. 민주시민의 권리는 투표일에만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유모차 시위처럼 소풍을 가듯이 시위하고, 퇴근 후에 자기 생각을 적은 피켓을 들고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집회와 시위야말로 보통 시민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민주적 의사표현 활동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짜장면이 좋다, 혹은 나는 짬뽕이 좋다고 시위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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